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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속에 켜켜이 쌓인 전라도 아낙 눈물 보따리
제목 민요속에 켜켜이 쌓인 전라도 아낙 눈물 보따리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8-08-04 19:41:03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1216
  • 평점 0점
 
윤행석
‘프로그램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고운정 미운정 들고,
헤어지는 광주MBC PD입니다.
현재 광주MBC <신얼씨구학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속으로 삭인 어매들의 그 눈물이 당신과 나를 키웠다
민요 속에 켜켜이 쌓인 눈물보따리

▲ 논밭에서는 물론 김발이며 바닷일을 억척스럽게 하며 아들 딸 8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임영자 할머니.
ⓒ 윤행석

<아리랑타령>에 곧잘 등장하는 노랫말 가운데 “노랑 저고리 앞섶에 흐르는 눈물/ 니 탓이냐 내 탓이냐 중신애비 탓이다”라는 가사가 있다.

맵고 짠 시집살이 설움을 토해내는 말인데, 필경 가해자는 시부모 아니면 서방일 텐데 그 원망의 화살을 당사자에게 못 날리고 엉뚱하게도 중매쟁이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치와 해학이라고 하기엔 아귀가 안 맞아떨어진다. 억눌려사는 처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 손가락질을 딴 데다 할 수밖에 없는 그 심리가 참 짠허기 그지없다.

“노랑 저고리 앞섶에 흐르는 눈물 니 탓이냐 내 탓이냐…”
이혼이 심드렁한 뉴스가 되어있는 요즘 세상을 모계(母系)사회라고 하지만 지금도 허리 구부정한 노인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철칙들이 있는 것 같다. 작년 11월, 진도읍 씻김굿 현장에서 만난 채정례(83) 할머니. 굿판에 섰다가 한동안 안보이시길래 집에 가셨나 보다 했더니 한참 후에 나타나서는 “영감님 밥좀 채려주고 왔다” 하신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어른’ 밥은 차려주어야 하고, 나들이를 하더라도 ‘어른’ 뜻을 따라야 한다. 인륜지대사 혼사(婚事)에서 자기 결정권이 없었던 시대, 부모의 뜻에 따라 시댁을 선택당해야 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 그네들은 저마다 색깔이 다른 눈물바다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아와야 했으니, 봉건적 가부장 치하의 여성시대를 넘어오는 동안 사내들이 참 몹쓸 짓 많이 했구나 싶다. 그러니 그네들의 옛 노래 속에 한(恨)이 깃들지 않을 리가 없다. 

▲ 남편의 상여를 떠나보내며 그녀가 부른 〈한풀이타령〉은 눈물 반 설움 반이었다. 곽순경씨.
ⓒ 윤행석

말년에 홀로 사는 여성 소리꾼들을 만나보면 십중팔구 가슴에 박힌 응어리가 깊다. 어찌 해볼 수 없는 가난이라는 날줄 속에서, 층층시하의 시집살이, 권위적인 남편 비위 맞추기라는 씨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시집간 딸의 눈물바람은 그 누구도 구제해 줄 수 없었으니, 고봉순 할머니(73·화순읍 서라실마을)의 신세타령 노래를 들어보자.

“돔방돔방 떠가신 구름 우리 땅(친정)에 가신 구름/ 우리 땅에 가시거든 편지나 한 장 전해주소/ 편지라서 무슨 편지/ 동지섣달 설한풍에 맨발 벗고 물 길은다고/ 신죽이나 보내라소/ 이삼사월 긴긴 해에 점심을 굶고 베짠다고/ 쌀 말이나 보내라소/ 울 아버니가 들으시면/ 받으신 밥상을 밀쳐두고 대성통곡을 허실레라/ 울 어머니가 들으시면/ 업었던 손자를 내려놓고 대성통곡을 허실레라….” 

“이내 눈에 흘른 눈물 비개 넘이 강이 되네”
시댁 시집살이에 젖은 눈물뿐이랴. 서방님 복이 없어서 알콩달콩한 재미는커녕 평생 가슴에 바윗덩이를 얹고 살았던 사례들이 적지 않다.

“편지왔네 편지와/ 앞문에서 받아서 들고 뒷문에 가 피어보니/ 한양가신 우리 낭군 안부 편지만 오셨네/ 한달에 두세 번 편지를 말소/ 동지 섣달 긴긴 밤에/ 이내 눈에 흘른 눈물/ 비개(베개) 넘이(넘어) 강이 되네/ 임이라고 만날라먼 이별없이도 만나거나/ 한달에 두세 번 편지를 말고/ 일년에 한번썩 다녀가오….”

 <보성 길쌈노래>를 줄줄줄 하는 공인순 할머니(79·보성 문덕면 장운마을). 그 옛날 화전놀이에서 실력을 뽐내던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에게 매를 맞으며 살았다. 술을 먹고 돌아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폭언과 폭력에 시달렸다. 20여 년 전 남편이 작고했을 때 그녀의 눈물샘은 말라붙어 있었다.

“영감 죽어도 외로운 마음이 요만큼도 없어. 없어. (영감 장례식때) 아 울라고 해도 눈물이 안나왔는디. 울라고 아무리 찾아봐도 울 일이 없어. 조카들 애러와서(어려워서) 눈물 쪼깐 나오믄 쓰겄다 해도 뭔 눈물 나올 건덕지가 요만치도 없응께. 내가 그런 세상을 살었던 말이요….”

▲ 동지섣달에 맨발 벗고 물 긷고, 점심 굶고 베짜고. 시집살이의
설움을 노래한 고봉순 할머니.
ⓒ 김태성 기자

“혹독한 시집살이 말로 다 못하요….”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 신안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외진 곳 가운데 한곳. 도초면 고란리에서 노래쟁이로 이름난 임영자 할머니(72). 인근 하의도가 친정인 할머니는 큰애기적에 귀담아들은 옛 노래 보유량이 엄청난 분이다.

“대가리는 짤라서 축구장에다가 폴드라도(팔더라도) 장모님 은혜를 갚읍세다/ 귀는 띠어서(떼어서) 전화통에다가 폴드래도 장모님 은혜를 갚읍세다/ 눈은 빼서 전기촉으로 폴드래도 장모님 은혜를 갚읍세다/ 이빨은 빼서 바둑판에다가 폴드래도 장모님 은혜를 갚읍세다...(장모타령)”
“달고동 달고동 달밝은 밤에/ 임고동 생각이 솔고동 난다/ 중신애비 너 죽으면 두름박에다가 담어서/ 한 갈쿠로 마개 막어 시궁창에다가 묻잔다….(아리랑타령)”

이런 재미있는(?) 민요 보따리의 소유자지만 그녀의 생애는 재미와는 거리가 먼 자갈밭 인생이었다. 논밭에서는 물론 김발이며 바닷일을 억척스럽게 하며 아들 딸 8남매를 키우며 살았을 뿐 아니라, 남편 시집살이가 혹독했다.

“말로 다 못하요….” 하고 말문을 닫아버리는 당신에게서 인고(忍苦)의 깊이를 짐작할 뿐. 그녀의 눈물 보따리도 노래 보따리만큼 켜켜이 쌓였으리라. 남편의 존재가 사라진 뒤에 오히려 가슴을 펴고 산다는 말에 웃어야 할까. 

▲ 〈보성 길쌈노래〉를 줄줄줄 하는 공인순 할머니. 서방님복 없어 평생 가슴에 바윗덩이를
얹고 살았다.
ⓒ 김태성 기자

“당신은 가면은 모든 것을 다 잊어불고…”

좀 다른 경우도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잉꼬 부부’ 소리를 들었던 곽순경(65·진도 지산면 소포리)씨의 고적한 일상에는 아직도 4년 전에 사별한 남편의 존재감이 드리워져 있다. “(남편 가고 나니) 싸우지 말고 살았더라면, 내가 좀더 참고 속을 편하게 해줬더라면 더 살았을랑가… 그런 생각이 들제…” 2004년 남편의 상여를 떠나보내는 마당에서 그녀가 부르는 <한풀이타령>은 눈물 반 설움 반이었다.

"우리 엄매 먼저 보내드리고/ 당신이 가셨으면/ 내가 얼마나 좋을소냐/ 당신은 가면은/ 모든 것을 다 잊어불고/ 활발하니 가셔갖고/ 하늘나라 올라가서/ 우리우리 자식들을/ 활발하게 잘 살게 도와주시오..." 

남들은 잉꼬부부라 했지만 노름 좋아하는 바깥양반 때문에 속앓이도 많이 하고 부부싸움도 곧잘 했다는 그녀. 배우자를 떠나보낸 뒷날들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모를 속울음을 많이도 삼켜야 했던 세월이었단다.

 "놈(남) 행복하게 잘사는 것 보면 저런 사람은 뭔 복을 타서 저렇게 같이 오래 사는고 하는 마음이 다 들제..."  TV가 동무가 되어주는 농촌의 고즈넉한 밤, 그녀의 눈물은 혼자서 흥얼거리는 <육자배기>에 젖어있다.

“추야장(秋夜長)∼/ 밤도 길드라∼/ 남도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만은∼/ 임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임을 만나서∼/ 긴 밤 짜룹게 샐∼/ 고나 헤∼” 

폭폭한 생애, 심중에 박힌 눈물
이런 이야기들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다 현재 진행형이다. 자식들 다 키워내고 이제는 허리펴고 살 만한 세상이 됐다지만, 그네들의 심중에 깊이 박힌 눈물은 뽑히지 않았다.
가부장 체제가 굳건했던 부계(父系) 농촌사회.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억압 속에서 가족 봉양, 육아, 노동까지를 떠맡아야 했던 시대. 어찌 그리 일상은 폭폭하고 각다분했을꼬.
눈물을 삼키기보다 당당하게 이혼을 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시대. 어머니들이 속으로 삭인 눈물 속에서 장성했으니, 우리 젊은 자식들은 구부정한 어매들의 말년을 좀더 호강스럽게 해드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기사출력  2008-06-11 18:46:36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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