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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풍경

이것 저것 우리들 세상살아가는 모습들입니다.

큰나무는 의연하고 깊은 물은 청정하고.
제목 큰나무는 의연하고 깊은 물은 청정하고.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9-11-29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112
  • 평점 0점

 
홈 > 사람과삶 > 심홍섭산골마을이야기
심홍섭

산골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 속에 깃든 소중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현재 화순군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큰나무는 의연하고 큰샘은 청정하고
장성 북하면 단전리 단전마을

▲ 단전마을 입구 느티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장군나무’로도 불린다. 나무 아래에 서귀정(瑞龜亭)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있어 지나던 객들도 자주 그 안에 들어 쉰다.
ⓒ 전라도닷컴

요즘 국도는 대부분 확장을 해서 옛 모습을 보기 어렵다. 마치 고속도로 같아 달리다 보면 밋밋하고 참으로 재미없는 길이 요즘 국도다.
하지만 이 국도는 다르다. 담양 대전면에서 시작해서 한재를 넘어 장성 북하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국도 1호선 구간은 여전히 좋은 길이다. 이 구간도 지금 공사가 한창이어서 구불구불 넘던 한재 고개길이 언제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 한재골을 넘어가다 만나는 작은 마을이 단전(丹田)마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에 있다.

골목길에서 낫을 뒤춤에 들고 가는 김용완(70)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마을이 명당이라 집집마다 대학생이 있다고 자랑이다. 집집이 교육열이 높아서 젊은이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없단다. 할아버지도 논 네 마지기로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네 명의 자녀 모두를 대학교까지 졸업시켰단다.

“모다 나가서 지그들 입에 풀칠허고 살믄 됐제. 뭐 더 있겄어?”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얼굴빛이 가을 햇살 같다. 13년 동안 마을 이장 일을 하고 이제는 할머니가 마을 이장 일을 본다고 한다. 평균 나이 70이 넘은 노인네들만 있어 이장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등 활동적이었던 할머니는 다행히 마을 일을 잘 보고 있다고 할아버지는 은근히 자랑이다.

▲ 단전마을 표지석.
ⓒ 전라도닷컴

▲ 가을 풍경 중 하나. 긴 간짓대를 써서 감을 따고 있다.
ⓒ 전라도닷컴

▲ 골목길에서 만난 단전마을 사람들.
ⓒ 전라도닷컴

▲ 단전마을 가운데 있는 큰샘. 지금까지 한번도 가물지 않았던 샘이란다. 예전에는 이 샘 하나로 마을사람들이 살았다.
ⓒ 전라도닷컴

소와 말 건강 비는 우마제 지내던 장군나무  
마을 입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그 아래에 서귀정(瑞龜亭)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있어 지나던 객들이 쉬고 있다. ‘장군나무’라고도 부른다.
단전마을은 강진을 본향으로 하는 도강 김씨 집성촌인데 임진왜란 때 이 마을 출신인 김충남은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다. 동생 김충노는 형의 영혼을 달래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형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후 동생도 형을 따라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였고 시신을 찾지 못해 초혼장을 치렀다. 나라에서 형제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나란히 선무원종공신으로 제수하였다. 나름대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었다. 이후 느티나무는 두 형제의 의연한 기상을 물려받은 듯 무럭무럭 자라 장군나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잘 자랐다. 임진왜란 때 심은 나무라 수령이 400년이 된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당산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선조가 심기도 했지만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초닷샛날에는 성대하게 당산제를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당산제 전에 우마제(牛馬祭)를 지내는데, 소와 말에게 먹일 짚, 콩 등을 집집마다 가져와 느티나무 아래에 뿌리면서 소와 말의 건강과 풍년을 빌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산제 당일 저녁이면 주민들이 각자 나무를 한 짐씩 가져와 마을 앞 공터에 쌓아놓고 불을 피워놓고 농악을 치면서 밤새 놀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정이 되면 농악대를 앞세우고 화주의 집에 가서 제물을 들고 나와 느티나무 밑에 진설하고 제를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다. 6·25전쟁으로 마을이 소개되면서 북하면 소재지에 있는 약수초등학교로 피난을 가서 3년 동안 함바집에서 살다가 마을로 돌아왔지만 모든 전통이 끊어져 버렸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한지공장도 있었는데 햇빛 좋은 날이면 냇가에 하얀 한지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물론 돌아가던 물레방아도 있었지만 6·25전쟁 이후 모두 없어졌다. 살아남은 건 저 느티나무, 당산나무뿐이다.
김용완 할아버지는 집 창고에 이젠 쓰지 않는 장구가 있다며 보여준다.
“장구만 봐도 여전히 흥이 나요.”

▲ 옥수수 조르라니
ⓒ 전라도닷컴

▲ 소박한 간식.
ⓒ 전라도닷컴

옥녀가 비단을 짜서 쌓아놓은 곳에 자리한 명당
단전은 배꼽 밑에 있는 부위인데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풍수지리상 명당이 있다고 한다. 북서쪽의 장군봉에서 시작되어 북으로 이어지는 지맥(地脈)을 ‘용등’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명당 중의 명당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쪽의 옥녀봉은 선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은 그 옥녀가 비단을 짜서 쌓아놓은 곳이니 얼마나 좋은 땅인가.

이를 믿는 풍수쟁이들이 지금도 많이 찾아온단다. 장군봉에 있는 혈자리에 묏자리를 잡으면 후손들이 3대가 벼슬을 하는 등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장성의 최고 지관인 박주부라는 지관이 그 명당을 찾으려고 장성읍에서 산을 넘어와서 그 혈자리를 가리키면 죽고 물러서면 살기를 반복했는데 3번째 와서는 다시는 그 혈자리를 찾지 않고 물러가면서 “이곳은 내 땅이 아니다”고 했다 한다.

단전마을은 육이오 전까지만 해도 약 70여 호 되는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22호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서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등산복을 입은 몇몇은 긴 간짓대를 이용하여 감을 따고 있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니 골목마다 자가용이 많다. 휴일이어서 고향에 온 차들이리라. 고향! 이 가을에 누군들 고향에 가고 싶지 않으랴.

김길순 할머니(72)가 따준 비단감 홍시를 맛나게 먹고 골목으로 나가니 마을 가운데 큰샘이 있다. 지금까지 한번도 가물지 않았던 샘이란다. 대부분은 지하수를 쓰지만 예전에는 이 샘 하나로 마을사람들이 살았다.

“학자는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던 변시연 선생 발자취 곳곳에
논둑길을 지나가니 손룡정사가 나온다. 알고 보니 호남의 대표적인 한학자였던 산암 변시연 선생이 얼마 전까지 거처했던 집이다. 산암 선생 큰아들인 변동보씨가 집을 지키고 사는데 그는 곧바로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서귀정으로 나간다.

산암 선생은 이곳에 자주 나왔다고 한다. 1995년 지은 서귀정의 현판도 선생이 직접 올렸다.  ‘民國…’으로 시작되는 상량문도 직접 썼다. 3·1독립선언이 있었던 1919년을 기점으로 했다 한다.
마을 안에 있는 정자인 봉상정(鳳翔亭) 현판도 선생 몫이었다. 선생은 평소 마을일에 손발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다. “학자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는 것이다. 산암 선생은 원래 장성읍에서 살다 10여 년 전에 이곳의 산세에 반하여 들어와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학맥은 이 마을에 흐르는 것인가.

마을 앞에는 요즘 공사가 한창이다. 국도를 확장하기 위한 공사라는데 북쪽 장군봉에 터널을 뚫고 ‘단전터널’이 아닌 ‘용두터널’이라고 커다란 간판을 붙여놓았다. 북쪽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던 선돌 2개는 공사하면서 없애버리고 저렇게 일방통행식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단전터널이라고 하지 않고 용두터널이라고 한 것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하지만 온갖 풍상 속에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당산나무처럼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글·사진=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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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력  2009-11-20 13:34:28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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