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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검단염전 소금 농사꾼 유억근
제목 임자도 검단염전 소금 농사꾼 유억근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09-12-21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103
  • 평점 0점
 
“좋은 소금은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보물”
김인정 인물탐험/ 임자도 검단염전 소금농사꾼 유억근

▲ “좋은 소금은 이 시대에도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보물”이라고 믿는 소금농사꾼 유억근씨.
ⓒ 전라도닷컴

변산반도 동쪽 도솔산에 자리한 선운사 창건설화에는 소금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도솔산에는 굶주린 도적떼들이 득실거렸고, 절집 터를 닦던 백제 승려 검단선사에게도 도적떼가 들이닥친다. 선사는 갖고 있던 소금을 내주었고, 소금을 팔아 짭짤한 이득을 본 도적떼들이 다시 선사를 찾아오는데 이때 선사는 소금 대신 소금 만드는 법을 일러준다.

갯벌 흙을 바닷물로 걸러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 만드는 우리 전통 염제조법, 자염(煮鹽)법이었다. 도적떼들은 서해안 소금농사의 개척자가 되었고, 해마다 선운사에 소금 시주를 했다 한다. 

값비싼 죽염 대신 착한 가격의 볶은 소금 개발
소금농사법으로 중생을 구제했다는 이 설화, 밥벌이가 생기자마자 바로 업종변경을 단행한 생계형 범죄자(?)들에게 엄한 계(戒) 대신 토착형 생업을 제시했던 검단선사의 중생구제법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이가 있다. 신안 임자도 검단염전의 소금농사꾼 유억근(59)씨다.

“아마 저는 전생에 검단선사를 찾아갔던 도적떼 중 하나였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 인연으로 이생에도 소금농사를 짓는 것이겠지요. 전생에는 선운사에 보은염을 시주한 것으로 그 은혜를 갚았다면 이생에는 좋은 소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는 것으로 그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염전 이름도 ‘검단’이라 지었습니다. 좋은 소금은 이 시대에도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보물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 친환경소금의 대명사인 마하탑 소금공장의 주인, 값비싼 죽염 대신 착한 가격의  볶은 소금을 개발해냈던 소금상품화의 일등공신인 유억근씨의 염전에 ‘검단’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이다.

그의 소금농사 이력은 이십여 년 남짓. 고향인 임자도에서 소금밭을 뛰놀며 유년기를 보냈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목포에서 유학을 했으며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시작했다. 1986년 목포에 소금과 젓갈을 파는 가게를 낸 것은 직장을 잃고 귀향을 하면서였다. 

“첫아이를 가질 무렵에 제가 다니던 직장인 한국교통법학회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됐어요. 그 당시에 제가 늘 관심을 두고 본 것이 소금문제였거든요. 제가 알기로 우리 소금은 꽤 좋은 소금인데 사람들이 사먹는 소금은 전부 외국서 들여온 저질 정제염이더라고요. 영양분이라고는 없고 짠맛만 내는 소금을 먹고 있는 게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그래서 고향에서 생산한 좋은 소금과 젓갈을 팔아보자고 가게를 냈죠.”

이때가 86년도, 당시 시중의 소금은 대부분 중국이나 사우디 등에서 수입해온 암염을 정제해 염분만을 추출한 것이었다. 천일염이라고 나온 것들도 바닷물을 3000도의 고열에 증발, 급속 냉각시킨 기계염 정도였다. 영양덩어리인 우리 소금은 공업용으로 분류를 해놓고 짠맛만 남은 해로운 저질소금을 먹는 현실이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그래서 소금장사를 시작했다.

▲ 유억근씨가 검단염전에서 써레로 소금을 걷고 있는 모습. 사진=한살림 제공
ⓒ 전라도닷컴

남들은 보상금 받고 염전 버릴 때 소금농사 시작한 ‘미친 놈’
아무도 천일염의 가치에 눈을 뜨지 않던 우리 소금의 수난기에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었는데 역시나 대가는 혹독했다. 5년이 다되도록 한달 매출이 십만 원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정말 어려운 때 시작을 한 거죠. 사실 우리나라 천일염제조는 일제 때 시작이 됐거든요. 해방 후에는 염전관리를 정부가 하다가 60년대 들어서면서 염 전매법을 폐지해버려요. 그 뒤로 서해안 일대가 전부 민간염전들이 되죠. 그런데 이것도 오래 못갑니다. 소금 수입개방을 하면서 정부가 염전을 폐지하는 정책을 씁니다. 폐염전을 하면 정부가 보상을 해줘요. 다들 보상금 받아먹고 염전을 버렸죠. 저는 폐염전 정책이 한창일 때 염전을 사고 소금농사를 시작했어요. 고향사람들이 미친 놈이라고 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는지 돌아가실 때까지 제 소금을 안드셨어요.”

하지만 그가 이 어려운 시절, 소금농사를 포기할 수 없게끔 만들어준 이들이 있었다. 유기농직거래운동체 한살림의 회원들이었다.
“저는 한살림 회원들을 천사라고 하거든요. 어느 해인가는 장마가 길어서 소금농사를 망쳤는데도 그 소금을 다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회원 한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이 분이 집에 있는 우리 소금하고 가게에서 파는 일반소금을 사다가 바지락을 키워 봤대요. 죽염, 구운 소금, 천일염, 시중 정제염(꽃소금), 맛소금까지, 이렇게 다섯 가지 소금으로 각각 유리 컵에 염도 3.5%, 바닷물 농도로 맞춰서 살아있는 바지락을 다섯 마리씩 넣었더니 바지락 움직임이 확실히 다르더랍니다. 우리소금에 넣은 바지락은 잘 사는데 정제염이나 맛소금에  넣은 바지락은 잘 못 놀고 금방 물이 흐려지더래요. 그런 반응이 있는데 소금농사가 재미있을 수밖에요.”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유기농운동단체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소금을 찾는 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규모 유통업체에서 물품을 공급해달라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거절했다. 규모를 갑자기 늘리면 품질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염전에 제초제 대신 일일이 함초 뽑는 정직한 소금농사꾼
그렇다면 그 많은 천일염 가운데서도 그의 소금이 ‘친환경소금’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우선 쓴 맛이 나는 봄소금, 가을소금의 생산은 자제를 하고 여름소금에 주력한다. 또한 염전에서 자라는 함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뽑아낸다. 소금종자물을 담아두는 함수조의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안에 눌러붙은 불순물이 썩지 않도록 청소를 하는 것은 물론 슬레이트지붕 대신 함수조 자체를 완전 송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볶은 소금을 만들 때도 무기물이 파괴되지 않도록 200도에서 500도 이하로 온도조절을 해가며 은근하게 볶는다. 볶는 온도를 700도로 올리면 40분이면 끝날 일을 두 시간에 걸쳐 한다. 누렇게 볶아진 소금에 표백제나 인공첨가제를 쓰는 일도 없다.

“태양과 바람, 바닷물이 만들어낸 소금은 그 자체가 완전한 식품이거든요. 우리 몸에 필요한 미네랄의 보고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소금값을 높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첨가를 해서 기능성 소금을 만들거나 염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서 저염 소금을 만들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고가의 수입산 기능성 소금을 들여다가 파는데 참 안타깝죠. 우리 소금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영양식인데, 농사를 정직하게 잘 지으면 됐지 가공을 하면 되거든요.”

그가 소금농사를 짓고, 좋은 소금을 만들어내는 데 땀을 쏟아붓는 동안 관련법안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7년 가을, 국회에서 44년 만에 소금을 식용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염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사실 법이 생활에 위배되었던 거죠. 김장을 하거나 장을 담글 때 누가 정제염으로 합니까. 다 천일염을 구해다가 간수를 빼고 쓰질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동안의 법으로 보자면 우리 국민들이 먹어서는 안 될 광물을 먹고 살았다는 것이죠. 늦었지만 천일염에 대한 취급이 달라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제도개편에 편승해서 가짜소금들이 다시 득세하는 데 있습니다. 수입소금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고, 또 인공적 가미를 해서 가격만 부추기는 경우도 있어요. 생필품인데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이 맞나 싶어요.”

▲ "저는 폐염전 정책이 한창일 때 염전을 사고 소금농사를 시작했어요. 고향사람들이 미친 놈이라고 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는지 돌아가실 때까지 제 소금을 안드셨어요."
ⓒ 전라도닷컴

천일염 질 높이려면 염부들의 소득보전이 우선
기능성 소금도 욕심이라고 한다. 너무 고급화된 비싼 소금도 부질없다고 한다. 소금농사를 짓다보면 그 짭조름한 염기에 생각의 거품까지도 빠지게 되는 것일까.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고 소금 자체의 맛을 충실하게 만들어내겠다고 하는 그의 소금농사법은 담백하고 간간하다.

“우리 소금 자급률이 아직도 10%밖에 안됩니다. 또 국산천일염도 염전의 90%가 주인 따로, 농사짓는 사람 따로인 상황이에요. 좋은 소금이 더 많이 생산되고 대중화되려면 고급화전략보다는 오히려 기본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염전 주인들이 소금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더 줘야 합니다. 지금 일반적으로 염전주와 경작자가 5대5로 나눠 가지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대량생산이에요. 품질에 신경을 못 쓰지요. 그러니 최소 6대4로 비율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소금 품질이 유지되죠.”

천일염의 질을 높이는 길이 고급상품화에 있다기보다는 소금농사를 짓는 염부들의 소득보전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염전바닥의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이가 내놓는 중생구제의 안같기도 하고, 소금법이 바뀐 후로 염전에 불고 있는 한탕주의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하다.
“뭐 고생했다고들 하시고, 사실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잘 살게 됐어요. 앞으로는 회향(廻向)이라는 것을 유념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더불어 사는 일을 불가에서 이르는 말이 회향이다. 기능을 첨가하지 않아도 소금은 이미 그 자체로서 온전하듯, 그가 굳이 유념하지 않아도 그의 소금농사 자체가 회향에 닿는 길은 아닐까 싶어진다.

글·사진=김인정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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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력  2009-12-02 16:44:58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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