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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해야 할 완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완도만 찍어도 다 못 찍고 죽을 것”
제목 “기록해야 할 완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완도만 찍어도 다 못 찍고 죽을 것”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작성일 201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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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해야 할 완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완도만 찍어도 다 못 찍고 죽을 것”
‘완도통신’ 운영자 박남수
2011년04월09일 16시11분

‘오늘 이곳 완도’의 보고자를 자임하는 박남수씨. 따뜻하고도 냉철한 시선으로 완도를 지켜보고 기록하고 있다. ‘완도통신’에서 ‘완도재발견’이란 꼭지를 꾸리며 그와 마실돌기에 자주 나서는 김옥씨가 찍어준 사진.

12월13일은 솔비네가 김장하던 날이었나 보다. 완도읍 망석리 맨 윗집 솔비네 외갓집이 하루종일 소란했다. 솔비네 할아버지는 완도읍 유일의 대장장이. 덕분에, 김치 담그느라 부산한 한켠의 고즈넉한 대장간도 들여다본다.

완도에 첫눈 내린 날은 12월17일! 완도읍 도암리에서 그 첫눈을 맞는다. 푸른빛 짱짱한 배추밭에도 허물어진 돌담에도 할머니 혼자 적요롭게 일하는 집마당에도 까치밥 붉은 감나무에도 내려쌓이는 눈을 만난다.

11월9일 완도항에 멸칫배 들어오던 시간의 활기도 배달받는다. 이제 막 당도한 배에서 선원들이 줄지어 멸치를 머리에 이고 나른다. 기다리던 구경꾼들이 멸치 속에 섞인 꼴뚜기를 골라내고 있는 모습도 재밌다.

11월6일은 완도읍민의 날. 일년내 바람과 싸우며 파도를 동무삼아 통발을 걷어올리던 사람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장화를 신고 통발을 어깨에 메고 물 아닌 길을 나섰다. 이날의 사진들에 붙은 제목은 ‘장화 신은 당신들이 자랑스럽다’.  “통발에 불가사리 잡아 패대기치듯 세상의 모순과 온갖 부조리들 그리고 썩은 인간들까지 싸그리 잡아들이는 멋진 공동체였음 좋겠다”는 축원도 따라붙는다.

‘오늘 이곳 완도’의 보고자를 자임
<완도는 행복하겠습니다. 장보고라는 사람이 있어…>
그의 블로그에 들른 방문객이 남긴 말이다.

그 장보고는 먼 옛날의 해상왕 장보고가 아니다. ‘오늘 이곳 완도’의 보고자를 자임하는 박남수(43)씨. 세상의 온갖 관행들에 물들거나 철들지 않겠다는 각오로 벼려진 듯한 맑은 눈 빛의 그 청년은 오마이뉴스의 인기 블로그로 손꼽히는 ‘완도통신’(blog.ohmynews.com/wandopia)을 꾸리고 있다.
 

장날, 그리고 군내버스

완도 그리울 때면 들르는 독자들 많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곳 완도에 이렇게 삶의 향기가 피어나고, 삶의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사랑스럽게 담아내는 이 분은 누구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라고 고마움을 순정하게 내비치는 독자들도 있다.

‘오로지 완도!’라는 정신에 충실한 그의 완도 기록은 전방위적인 관심사, 비판적 쓴소리와 세심하고도 따뜻한 눈길로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시간의 지층을 쌓아올려가는 듯한 성실함, 완도 고샅고샅 지며리 닿은 발길이다.
“저는 완도 말고 찍을 게 없습니다. 아니 완도 것만 찍어도 다 못 찍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기록해야 할 완도의 이야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 뜨거운 맘과 절박함은 ‘너무 늦게사’ 돌아왔다는 말에도 배어 있다. 고향으로의 귀환은 서울생활 15년을 거친 뒤였다. 1년여 강진 생활을 거쳐 지난 2005년부터 완도살이를 시작했다. 고향은 완도항이나 마량항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고금도.
“당초 고금도로 돌아가 살려 했지만 부모님은 자식이 고향에 돌아오는 걸 마뜩지 않아 하셨어요.”

서울살이 하던 자식의 귀향이 부모에겐 아마 낙오나 좌절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향 가까이’로 마음을 바꿨다. 1년 동안의 강진 생활을 거쳐 완도읍을 새 주소지로 삼은 건 2005년부터. 고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시간들이었다. 

몸만 부려 놓는다고 그것이 고향으로의 진정한 귀환은 아닐 터. 마음 바쳐 할 일이 있어야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뜻밖에 전라도닷컴을 언급했다.
“2004년 광주버스터미널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전라도닷컴을 보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지요. 지역을 주제로 한 기록!”
자신의 마음 속에 어렴풋하게 자라던 어떤 갈망이 명징해진 순간이랄까.

지금까지 자신이 찍었던 사진 중 제일 좋아하는 사진. 추운 겨울날 갯벌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지켜보는 누렁이의 모습이 담겼다. 2003년 11월 추운 겨울날 오후, 강진 도암면에서.
 

‘지켜보는 시선, 지켜보는 마음’으로 완도 기록
그의 기록은 무엇보다 사진의 힘에 기대고 있다.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는 그. “말만으론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할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그에게 세상을 향한 발언이다.
“제 형편에 좀 비싼 니콘 똑딱이를 사서 찍어대기 시작했죠. 이후에 캐논 30을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자신이 찍었던 사진 중 제일 좋았던 사진은 똑딱이로 찍었던 사진이란다.

추운 겨울날 갯벌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누렁이의 모습. 2003년 11월 추운 겨울날 오후, 강진 도암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도암, 신전 바닷가를 차로 달리는데 갯벌에 누런 한 점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누렁이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갯것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겨울 바람은 차고 바닷물은 곧 들어오고 누렁이는 꼼짝도 않고 주인을 지키고 나도 한참이나 그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메모리 카드 용량이 아주 작아서 사이즈도 작고 화질도 거칠지만, 지금 카메라로 찍었더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또 그게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마음 돌이키는 사진.
기술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사진에 담긴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켜보는 시선, 지켜보는 마음. 누렁이와 그, 여러 겹의 시선과 마음이 그 사진을 애잔하고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그가 찍는 완도 곳곳의 사진들의 바탕에 깔린 것도 그렇듯  ‘지켜보는 시선, 지켜보는 마음’일 것이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그는 오후에 일을 시작하기 앞서 아침마다 완도 마실돌기를 한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과다.

12월7일 완도읍 중도리에서.

‘빙그레 웃는(莞) 완도’를 꿈꾸는 마음에서 비롯된 고언들
세상 돌아가는 꼴을 결코 냅두지 않는 그의 긍정적 오지랖은 ‘완도리포트’ 같은 꼭지들에서 빛을 발한다.
완도 곳곳을 더트고 다니는 그는 ‘모월 모일 모시’의 충실한 목격자이고 증언자이다.
군수로부터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어떤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할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만다. 전시행정이나 무사안일한 행정, 크고작은 완장의 권력 등을 지적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걷기엔 너무 위험한 학생들의 등하교길 실태도 들춰내고, 노인들이 저마다 손에 가득 한 보따리씩 들고 아주 힘겹게 오르는, 거의 노인전용버스인 군내버스를 보며 ‘저 어른들을 위해 저상버스라도 운행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의 ‘보고(리포트)’는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간섭과 감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 글에서처럼  ‘이름 그대로 빙그레 웃는(莞) 완도’를 꿈꾸는 마음에서 비롯된 고언들이다.

<오래 전에 김 포자를 배양하던 시설로 보입니다. 광어 양식장일 수도 있습지요. 지금은 누가 주인인지 모르는 폐허가 돼불었습니다. 대부분 사업 실패, 부도 등으로 도망가불고 경매에 부쳐져 인자 건물(토지)의 이용과는 상관이 없는 투기꾼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땅으로 더 큰 이문 남기려는 돈 많은 그들에게 폐허나 흉물이 문제될 건 없지요. 대신 양식하기에 적당한 땅과 건물이 저렇게 낡아가는 동안,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해안을 매립하거나 산과 농지를 파헤쳐야 합니다. 아름다운 남해안이 난개발로 온통 흉물이 되어갑니다. 어디랄 것도 없이 마을마다 예사 풍경이랍니다. 완도 어디를 가도 그대로 그림입니다. 사진 초짜의 그림이 내가 봐도 좋은 이유입니다(?). 이 아름다운 완도가 더 아름다워지기를 꿈꿉니다. 이름 그대로 빙그레 웃는(莞) 완도를 그립니다. 자연과 인간이, 개발과 보존이, 공익과 사익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그런 멋진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6월17일 완도군 군외면 당인리 아랫마을>

저마다에게 자신의 고향,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

자신이 사는 곳을 재발견하게 하는 힘
완도의 오늘을 기록하며 그는 완도 아이들의 미래를, 완도의 미래를 자주 그려본다.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꿈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고 싶고, 아이들이 자기 자신과 고향에 대해 긍지를 갖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지요.”
그래서 교육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완도 교육에 진정 필요한 것은 명문고 만들기가 아니라 홀대받는 완도수고(수산고등학교)의 진짜 존재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매김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다. “완도의 문제는 곧 교육의 문제이며 완도 교육과 경제의 한복판에 완도수고가 있습니다. 수고를 나온 애들이 결국 완도를 지키고 먹여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걸맞은 존중과 긍지가 필요하죠.”

완도의 아이들을 ‘완도를 제대로 아는 아이들’ ‘완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꿈도 갖고 있다.
“한번 떠난 애들은 연어처럼 돌아오지 않습니다. 고향을 잘 모른 채로 큰 아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더욱 힘들지요.”
봄만 되면 그는 지역 매체 등을 통해 제안한다. 완도 한바퀴 구석구석 돌아보는 학교 소풍은 어떻느냐고. “너 군내버스 타봤어?” 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그가 자주 던지는 물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완도 중앙초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했던 캐나다 출신 아가씨 멜리사는 완도에서 단지 2년을 살았지만 완도를 가슴깊이 담고 떠났어요. 자전거 타고 신지는 백번 이상을 갔고 보길, 소안, 노화, 청산, 고금도 등지를 두루 수 차례 돌아다녔지요. 그러면서 그 누구보다 완도를 깊이 알고 완도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요.”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도 심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의 블로그를 보면 곧잘 하는 말이 있다. “이런 것도 사진이 돼요?” 바다든, 그 바다를 생업의 터로 삼아 일하는 사람들이든, 동네 고샅이든 너무 익숙한 주변의 풍경이고 일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사진이 돼요?”란 물음은 대개 “이렇게 보니 뭔가 다른데요”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의 사진은 그렇게 자신이 사는 곳을 재발견하게 하는 힘도 갖고 있다.

신대 한 마리.

고향의 모습, 고향 부모님들의 모습을 직시해주기를
그가 사진 찍으러 가장 즐겨가는 곳은 완도읍 오일장과 선창가. 그곳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이 설 때면 빼놓지 않고 들락거리며 사진 찍는 새, 아짐들이 모델료 내라 농담 걸면 ‘기냥 장부에 달어놓씨요’ 응수할 만큼 넉살도 늘고 정도 쌓였다.
선창가에서 생선 내장 따는 할머니들은 늘 마음에 밟힌다. 그분들 얼굴, 그분들 손 모두 다….

“겨울이면 너무 춥고 여름이면 너무 더운 그곳에서 그 열악함에 굴하지 않고 그 힘든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들이죠.”
그래서 그 할머니들과 더불어 생선 내장 따는 일을 사회적 기업화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보고 있는 요즘이다.

완도에 관한 기록이라면 뭐든 소중하게 여기는 그는 아직 본격적 작업은 아니지만 소리도 기록한다. 그가 ‘완도통신’에 올려놓은 12월14일 완도읍 대구미 마을의 소리는 암탉소리와 ‘소금 사세요 소금’을 외치는 소금장수의 목소리. 듣노라면 누구네집 그 암탉이 궁금해지고, 소금 사러 얼른 신발 꿰차고 달려나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된다. 그 골목으로 금방 사람을 공간 이동시키는 소리. 아무렇지 않은 이 심상한 소리도 그에게 가닿으면 소중한 생활의 소리, 고향의 소리!
그는 자신의 보고서의 독자가 그 누구보다 고향 떠나 사는 완도 출신의 아들딸들이길 바란다. “고향의 모습, 고향 부모님들의 모습을 직시해주기를, 잊고 살거나 버리고 살거나 감추고 사는 정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집, 사람, 길, 그를 매혹시키는 세 가지.
집, 사람, 길을 만나러 완도 곳곳을 더트고 다니는 발걸음은 새해에도 계속된다. ‘오늘이 아니면 기록하지 못할’이라는 절박함을 스스로 품고. 완도의 수많은 섬들을 기록하는 것 역시 ‘보고자’로서의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꿈이다. 그 꿈의 영토, 넓고 아름답다! “저는 완도 말고 찍을 게 없습니다. 아니 완도 것만 찍어도 다 못 찍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기록해야 할 완도의 이야기가 너무도 많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정말 맞다!

남신희 (miru@jeonlado.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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